망량의 상자 3화 리뷰

[Master-J 스페이스/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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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명은 손안의책 출판사에서 발매된 소설 [망량의 상자]의 표기를 따릅니다.

대상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그 존재를 명확하게 하는 기능 뿐만 아니라 하나의 속박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번 3화의 주인공들인 기바 형사와 요리코는 자신에게 '나는 XX이다' 라는 정의를 내리고 자신이 내린 정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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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의 '내세' 라는 말은 말장난같습니다만 그 말에 집착하고 있었던 건 요리코만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 얘기를 제안했던 가나코 또한 사고를 당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면서 처음 떠올린 목적의식이 요리코와 내세에 대해 다시 상의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말이죠.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어떤 죄의식을 보이면서 '벌을 받은 것' 이라고 했는데요, 그녀가 자신은 요리코의 내세이며 요리코는 자신의 내세라는 이야기를 제안한 것은 동정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요리코에게 있어 숭배에 가까운 선망의 대상이었던 가나코이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요리코에게 품고 있는 어떤 선망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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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건방진 엘리트의 전형적인 인상을 주는 마스오카는 그 인상과 언행에서 변호사같은 사람일 것이라는 걸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엔 그렇게나 머뭇거리더니 '한 명만 동행' 하라는 말에 가나코의 진짜 가족인 요코를 제쳐두고 성큼 나서는 이 아메미야는 아직 그 '배역' 이 짐작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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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깁니다만 2화 마지막에 등장한 하얀 옷의 근엄한 남자가 바로 '요코와 아는 사이인 의사' 였습니다. 병원 간판도 없는 거대한 상자모양의 괴상한 건물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있던 환자를 기적적으로 살려냈다면 역시 수상한 장소인게 정석입니다. 그나저나 '거기 들어간 환자는 살아서 못나온다' 라는 건 도시전설 수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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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가 좀 얄밉게 생기긴 했습니다만 사실 그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사실 기바가 하고 있는 행동은 속된 말로 삽질입니다. 직업 경찰이 조사 진행중인 관할지역의 사건을 무시하고 다른 관할에 매일같이 출근해서 빈둥대고 있다는 건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행동이죠. 하지만 지금의 기바에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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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배우였던 요코와 상자같은 기묘한 건물이라는 요소에 더해진 협박장은 기바의 마음에 하나의 트리거로 작용해버렸습니다.
'자신은 빈 상자였지만 지금은 지켜야 할 것과 싸울 적이 생겼다.' 라는 자기 설정은 기바 자신의 심정을 정리한 말이겠습니다만 그것을 스스로에게 들려줌으로써 그는 자신의 본래 일을 제쳐두고 더욱 이 문제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렇게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의를 내려버린 이상 이 곳을 버리고 자기 담당 구역으로 출근하면 그는 '지켜야 할 것'을 버리고 '싸울 적'으로부터 달아난 게 되어버리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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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기설정에 자기가 사로잡혀버린 인물이 또 한명 있습니다.
요리코에게 있어 가나코는 완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자신의 '내세'란 건 요리코에게 있어선 희망이며 행복인 셈이죠. 자신의 내세인 가나코가 여기서 사고로 죽는다는 건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사태인 겁니다. 애초에 그 완벽한 존재인 가나코가 눈물을 보였다는 것도, 여드름도 납득이 되지 않기에 시해선이 되기 위한 천인오쇠의 징후였을거라느니 하면서 머리를 짜내봅니다만 그래서야 가나코의 내세가 자신이 되지 않으니 설정에 모순이 생깁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 희망의 열쇠였던 '가나코는 자신의 내세' 라는 명제가 지금은 고뇌의 싹이 되어버린 겁니다.
(시해선은 인간의 육신을 벗고 선인이 된 존재를 말하고 천인오쇠는 천계의 사람이 죽을때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징후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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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의 어머니의 변모는 병적인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닙니다. 어느샌가 딸의 태도가 비뚤어지더니 밤늦도록 밖을 싸돌아다니고 급기야는 어머니에게 '죽어버려' 라는 폭언을 내뱉기에 이르렀으니까요. 요리코는 어머니가 이상해졌다고 했지만 어머니 입장에선 딸이 이상해진 겁니다. 딸의 그 갑작스런 변모에 당황하고 있을 때 흔히 말하는 '도를 아십니까' 종류를 만난다면 쉽사리 걸려들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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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에서 언급되었던 제령사 온바코(상자)님의 등장입니다. 흔들리던 요리코의 어머니를 그에게 인도한 건 전부터 요리코의 어머니와 친밀해 보이던 사사가와인듯 합니다.
그나저나 어머니가 이상한 영감님을 데려오고, 그 영감님이 집이라는 상자에 깃든 망량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한다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희한한 몸짓을 하고 있으니 요리코로선 환장할 노릇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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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그 때 마주친 남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요리코의 뒤에 서서 의미심장하게 말을 한 걸 보니 요리코가 보이긴 한 모양인데 바로 다음 순간엔 아무렇지도 않게 몸으로 밀치고 가버리니 말이죠. '어리석은 자들을 관찰하는 건 재미있다' 고 했지만 그건 누구의 무엇을 관찰한다는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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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소식을 듣고 변호사로 추정되는 마스오카가 달려왔던 것도 그렇고, 협박 편지에 상당한 수의 경찰이 달려와서 경비를 서는 것도 그렇고, 가나코가 어떤 식으로든 상당히 영향력있는 사람과 연관되어 있는건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바의 말대로 요코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는 것이나 협박장, 아메미야등 아직 가나코를 둘러싼 환경에는 비밀이 많습니다. 그나저나 요리코가 뒤늦게 떠올린 범인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대상을 '범인' 이 아니라 '적' 으로 칭하는 걸 보면 기바는 아직도 자신의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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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각에 단단히 세뇌된 건 요리코도 만만찮습니다.
가나코는 자신의 내세이며 완벽한 존재이기에 친구가 잘 생기지 않았다든가 하는 네거티브한 이야기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1화 부터 수도 없이 제시된 겁니다만 가나코에 대한 요리코의 신성화도 정말 병적인 수준입니다. 자신의 내세라는 그녀들만의 설정을 생각하면 일종의 자기애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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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사고 다음은 실종사건입니다. 마술쇼의 소실마술처럼 사람이 몇 십초만에 사라진 현장, 아연실색한 사람들 속에서 요리코만은 '하늘로 올라갔다'며 기뻐합니다. 이 실종 - 요리코의 표현으론 승천을 특유의 내세론과 결합시켜서 어떤 결론을 냈든 일단 요리코의 마음속에서 이 사건은 어떤 긍정적인 형태로 완결이 지어진 모양입니다. 물론 다른 어른들에겐 완결은 고사하고 일이 더 커진것 뿐이지만요.


사건은 조금씩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이번 화에서 인물들의 심경은 한결같았습니다. 특히 이번 화의 주인공들인 기바와 요리코는 남들이 들으면 바보같다고 할 생각들을 가슴에 품고있으며 그 생각은 뒤로 갈수록 확고해지기만 합니다.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결말을 본 요리코입니다만 그것으로 끝인지, 그리고 근본적으로 사건 자체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 오히려 진짜 사건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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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5 01:06 2008/10/25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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